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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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뉴스
"문화시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축도, 장비도 아닙니다. 누가 운영하느냐, 그리고 어떤 철학으로 운영하느냐입니다."
23일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눈 심규만 강릉아트센터 관장의 말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운영 주체’와 ‘콘텐츠’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겉보기에는 웅장한 공연장이라도 그 안을 채우는 사람과 프로그램이 부실하다면, 그곳은 곧 텅 빈 상자나 다름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심 관장은 강릉아트센터의 출범부터 현재까지 운영 전반을 책임지며, 지역 공연예술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아트센터가 실질적으로 어떤 기획과 구조로 움직이는지, 예산은 어떻게 쓰이고, 인력은 언제부터 준비되어야 하는지 등을 그는 상세하게 설명했다. 아트센터를 건립을 구상할 때 강릉시가 가장 핵심적인 항목으로 상정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역성, 전통문화를 재창조할 수 있는 강릉의 문화공간, 창작공간으로 발전 가능성, 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축제를 추진하는 기획력 등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어요. 동계올림픽 문화행사를 하기 위한 핵심 공간으로의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심 관장은‘운영 주체’가 아트센터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직접 운영할 것인지, 문화재단 같은 기관에 위탁할 것인지에 따라 센터의 모든 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조직 구성부터 인력 채용 방식, 예산 배분까지 모두 영향을 받아요. 건물만 짓고 나중에 운영을 고민하는 건 가장 위험한 방식입니다. 양주시에 가장 적합한 운영 주체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그가 이끄는 강릉아트센터는 강릉시 직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많은 책임이 따르지만, 동시에 기획과 운영 전반에 걸쳐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관장 본인도 임기제 공무원(개방형 공모)을 통해 선발되었고, 기획팀장 시절부터 극장 설계와 시범 운영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다.
◇동계올림픽이 남긴 강릉의 대표적 문화시설=강릉아트센터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건립되었다. 당시 올림픽과 관련된 주요 문화행사를 치를 공연장이 필요했고, 인프라가 부족했던 평창 대신 강릉이 선택된 것이 행운이었다. 총 460억 원(국비 50%, 도비·시비 각 25%)이 투입된 이 공연장은 이제 강원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같은 시설을 짓는 데 1천억 원 이상이 소요됩니다. 당시 예산으로는 기적처럼 저렴한 비용으로 지은 셈이죠."
강릉아트센터의 사임당홀은 약 998석 규모다. 초기엔 ‘강릉에 이 정도 규모는 무리’라는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여러 공연이 매진될 정도다.
"처음엔 500석도 안 찰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공연장이 생기고, 좋은 콘텐츠가 들어오면 수요는 창출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KTX 강릉역이 생기기 전을 예로 들며"인프라가 수요를 만든다"고 단언한다. 강릉행 KTX는 주말과 평일 모두 승객으로 붐빈다."극장은 인구수가 아니라 기획력으로 채운다"는 그의 신념,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경제학 법칙이 적용되는 현장이다.
공연장의 좌석 수가 1천 석을 넘으면 무대·조명·음향 분야에서 1급 기술기사를 상시 고용해야 한다. 이같은 의무 조항 때문에 지자체의 많은 공연장이 1천 석을 아슬아슬하게 밑도는 규모로 설계되는데, 심 관장은 이 역시 본질을 놓친 접근이라고 말한다.
"수익을 내려면 1200석 이상이 되어야 하고, 뮤지컬처럼 큰 무대를 고려하면 1500석은 되어야 손익 분기점을 넘을 수 있어요."
◇예산이 음향과 무대를 결정한다
강릉아트센터의 음향 설계는 독일 업체가 맡았지만, 심 관장은 "아날로그 기반이라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예산 때문이다. 좋은 음향을 갖추려면 설계 초기부터 예산이 넉넉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앰프, 스피커, 방음과 흡음 처리 등...이건 집에서 홈시어터 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결국, 돈이 있어야 선택지가 생기죠."
강릉아트센터는 시립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전속단체로 운영하고 있다. 시립예술단에만 연간 7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며, 수익은 2~3억 원 수준에 그친다. 통상 오케스트라가 합창단 예산의 두 배를 사용한다.
1년 시립예술단 예산이 10억 원이 채 안 되는 양주시와 비교할 때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라고 할 수 있다. 1년 총예산은 강릉시가 많지만, 인구수에서 7만이나 적은 강릉시의 문화 예술 정책은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모든 사람이 축구장을 찾지는 않죠. 마찬가지로 모든 시민이 공연장을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공간이 바로 공연장입니다."
◇기획력이 공연장의 운명을 좌우한다
강릉아트센터는 지역 문화예술 단체와 함께 공동 제작을 추진하는 데에도 매우 능하다. 국립예술단체는 물론, 지역 국악단체, 무용단과 협업하여 공연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티켓 수익으로 운영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획력으로 관객을 개발하고, 새로운 문화를 제안해야 공공 공연장의 의미가 있는 것이죠."
강릉아트센터는 전속단체가 아닌 강원도립국악단과 협업하거나, 미술관에서 공연을 열며 ‘체감형 문화 서비스’를 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2028년 말 개관을 목표로 하는 양주아트센터 건립에 대해서도 그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핵심 인력의 사전 채용이다.
"공연기획, 아트센터 운영진의 사전 조직과 구성이 필수적입니다. 집주인이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양주아트센터의 경우 2026년 말까지는 지휘자, 기획자, 기술팀장 등 핵심 조직이 꾸려져야 해요. 개관 프로그램도 최소 1년 전에는 완성돼 있어야 합니다."
아트센터 운영과 관련한 예산을 의회에 승인받는 과정, 집행부가 예산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마찰이나 갈등은 없을까? 아마도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 심 관장은 어떤 전략과 자세로 풀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행정을 하는 분들은 사실 체육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종사자들에게 비하여 관대한 편은 아니죠.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예산 절감의 필요성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정서적 관점을 배려해야 하고, 적자가 불가피한 아트센터 운영을 시민에 대한 문화복지의 차원에서 꾸준히 지속해야 합니다. 시장과 시의회의 인식이 매우 중요해요. 다행히 강릉시는 아트센터와 예술단에 대한 지원이 다른 지자체에 비해 매우 과감하고 전폭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강릉시민은 행복합니다. 아트센터와 시립예술단 역시 마찬가지죠."
◇아트센터는 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담는 공간
사람 없이 건물만 짓는 것은 실패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심 관장은 사물놀이 연주자로 예술계에 입문했고, 공연 기획과 제작을 거쳐 예술경영을 공부해 전문성을 쌓았다. 그는 예술가와 기획자는 완전히 다른 직업이며, 경영마인드가 없는 예술가는 극장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전시를 잘 기획하는 건 아니에요. 바이올린 전공자가 페스티벌을 기획할 수는 없죠."
강릉아트센터의 연간 운영 예산은 약 150억 원이며,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17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 중 기획공연과 전시 비용으로 30억 원, 예술단체 운영이 70억 원, 시설 유지비 등이 50억 원이다.
이를 고려하면 양주에서 아트센터를 짓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연 150억 원의 예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계산서가 나온다. 그는 아트센터 건립을 준비하는 양주시에 이렇게 조언한다.
"문화는 도시의 품격입니다. 극장은 단지 공연을 보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과 철학을 담는 공간이에요. 공연장은 크고 멋진 건물이 아니라, 철학과 콘텐츠로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해요. 그것을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시민의 문화적 삶은 확연히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