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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정차역 안 들려”…중요 소리만 키우는 ‘텔레코일존’ 필요해
  • 등록일

    2024.06.04 09:51:08

  • 조회수

    39

  • 시설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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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 농아인의 날

인공와우·보청기로 안 들리는 주요 정보
텔레코일, 소음이 뒤섞인 공간서 보청기
제 역할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설비

‘치이이익’ 지하철 문 열리는 소리, ‘바스락’ 옆 사람 옷이 스치는 소리, ‘탁 탁’ 여러 명이 걷거나 뛰는 소리…. 반면 이들 소음에 묻혀 정작 중요한 ‘정차역 안내 방송 소리’는 매우 희미하게 들린다. 보청기와 인공와우 같은 청각 보조기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이 지하철에 오르면 듣는 소리다. 청각 보조기기는 주변 모든 소리를 증폭해 들려주기 때문이다. 보청기가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3일 ‘농아인의 날’을 맞아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소리만 증폭해주는 ‘텔레코일존’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텔레코일은 강연장이나 공연장, 지하철처럼 방송 소리가 중요하지만 소음이 뒤섞인 공간에서 보청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설비다. 텔레코일존에서 청각장애인은 보청기 등의 ‘텔레코일 모드’를 활성화해 마이크 소리, 방송 소리 등만 증폭해 들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청각장애인의 74%가 보청기를 사용한다.

실제 보청기 기술 발달과 언어 재활 훈련으로 상당수 청각 장애인은 어느 정도 듣기와 말하기가 가능하다. ‘수어 확대’가 듣고 말하기가 크게 어려운 농아인을 위한 것이라면, 보조도구를 이용하면 듣고 말하기가 가능한 수준의 청각장애인에게는 텔레코일존이 필수적이다. 이들 대부분이 수어 대신 비장애인처럼 입말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

3살 때 청각장애 진단을 받아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는 이준행(29)씨는 “지하철이 한강 다리 위에서 멈춘 적이 있었는데, 방송이 안 들려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말은 잘하면서 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까 봐 옆 사람에게 필담으로 상황을 물어봤다”며 “평소 수어가 아닌 입말(구어)을 사용하는데도 이럴 때마다 말을 못하는 척하는 게 속상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실태조사(2020년)에서 수어를 원활히 사용할 수 있다는 청각장애인은 12%였고, 주로 입말로 소통한다는 비율은 84.2%였다. 송재명 한국난청인교육협회 기술자문위원은 “1988년에 인공와우 수술이 처음 이뤄져 그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일수록 수어를 배워본 적이 없거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인데, 보조도구를 이용하는 청각장애인 복지 정책인 텔레코일존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공공이용시설, 교육시설, 공연장 등에 텔레코일존을 설치하는 것이 ‘장애인 주차구역 설치’처럼 일반적인 복지정책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미국 장애인법(ADA)은 일정 크기 이상 시설에 텔레코일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청각 보조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영국 평등법, 오스트레일리아(호주) 건축법 등에도 관련 조항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 제정이나 시범사업으로 버스정류장이나 시청 민원실 등에 텔레코일존을 도입한 정도다. 문화 공간이나 대중교통에서 이를 찾아보긴 쉽지 않다. 청각장애인 권헌규(27)씨는 “프로야구 팬이라 야구장에 자주 가는데, 응원 소리와 주변 소음 등으로 경기소리가 안 들려 경기장에 가서도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로 영상 중계를 볼 때가 많다.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소외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2020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공중이용시설 등에서 텔레코일존을 의무화하려 했지만,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해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석말숙 나사렛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아직 우리 사회는 인공와우 수술을 한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상태”라면서 “시각장애인에게 음성 해설 기능이 필요한 것처럼, 청각 보조기기를 착용한 이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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